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다음 전략을 결정한 후, Xiao Yan과 다른 사람들은 지난 2 시간 동안 가끔 만난 노인 팀에 집중하기 시작했지만,이 세 팀은 너무 가까워서 모두가 가깝습니다.━
‘조선 출신’모친 둔 한국어학자 노마 히데키
도쿄로 대학을 가기 전,어머니가 꺼낸 이야기를 열여덟 살 소년은 선뜻 이해할 수 없었다.호적등본을 펼쳐 보인 부모는 어머니가‘조선 출신’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려줬다.함경도에서 일본으로 왔다가,6·25 전쟁을 거치며 가족과 연락이 끊겼다는 것이었다.어머니가 자신의 출신을 아들에게조차 말하지 못했다는 사실,그리고 한국어를 거의 잊어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이 소년에게 충격을 줬다.그랬던 소년은 20여 년 뒤,한국어를 전공하는 학자가 됐다.
『한글의 탄생』 『언어존재론』 등을 쓴 언어학자 노마 히데키(野間秀樹) 전 도쿄외국어대 교수의 이야기다.현대미술 작가로 활동하던 그는 서른 살에 다시 대학에 들어가 한국어를 전공했다.한글날을 이틀 앞둔 7일 그를 만나 한국어와 맺은 인연,한글 연구와 K팝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.
Q : 어머니는 어떻게 일본에 오셨나.
A : “해방 전에 공부하러 오셨다.열두 살 때 부산에서 연락선을 혼자 타셨다고 한다.6·25 전까지는 가족들과 편지를 주고받았지만 이후 완전히 끊겼다.그래서 일본에서 함께 지내던 분의 양녀가 되셨다.이후 한국어를 쓸 기회가 전혀 없었고‘어머니’정도의 단어만 어렴풋이 기억하는 정도였다.처음엔 일부러 감추시는 건가 싶었는데,나중에 정말 잊어버리셨다는 걸 알게 됐다.”
Q : 어머니도 잊은 한국어를 왜 공부했나.
A : “환경이 달랐다면,나도 한국어 화자로 자라지 않았을까 싶었다.설명하기 어려운데‘언어를 빼앗겼다’는 생각이 들었다‘모어가 아닌 언어는 어쩌면 모어가 됐을지도 모르는 언어다’란 명제를 이때 깨달았다.그렇게 독학이 시작됐다.한국어 교재를 구입했는데,시중에 나온 모든 교재를 살 수 있을 만큼 종류가 적었다.”
Q : 어려웠던 건 뭔가.
A : “된소리(ㄲ·ㄸ·ㅃ)와 거센소리(ㅋ·ㅌ·ㅍ) 구별이 힘들었다.한국어 모어화자들이 정말 이걸 구별하나 싶더라.가장 괴로웠던 건 내가 만든 문장이 맞는지 물어볼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.의문이 생길 때마다 사전 여백에 적었다.나중엔 메모로 꽉 찼다.”
그는 원래 도쿄교육대(현 쓰쿠바대)에서 미술을 공부해 현대미술 작가로 활동했다.
Q : 한국과의 인연도 미술로 시작됐다.
A : “한국 현대미술을 소개하는 전시를 보고 마음에 드는 작가에게 서툰 한국어로 편지를 썼다.편지가 오가다가 함께 전시하자고 마음이 맞았다.이때 교류했던 화가 중 한 명이 나중에 국제적으로 성공한 이상남이다.이들과 1979년 서울과 도쿄에서 교류전을 열었다.한국에 간다고 하니 어머니가 옛 편지와 여러 정보를 주셨다.혹시 가족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니 가져가라는 것이었다.정말로 기적처럼 서울에 계시던 이모님과 외삼촌을 만났다.프라자호텔(현 더 플라자)에서 만나는데,어머니와 똑같이 생긴 분이 걸어오시는 거다.DNA 검사 같은 건 필요도 없었다.(웃음) 이후 왕래가 이어졌다.”
노마 교수는 현대일본미술전에서 수상했고 개인전도 여러 번 열었다.평소 동경하던 이우환 화백에게 전시 안내 엽서를 보냈더니,이 화백이 찾아왔다고 한다.그는 “당시 일본은 한국을 멸시하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현대미술계만큼은 달랐다.이우환이라는 존재 때문이다.예술과 문화가 가진 힘이 얼마나 큰지 느꼈다”고 회고했다.
Q : 이 화백이 뭐라고 하던가.
A : “‘(작품들이) 재미있다’고 하셨다.다만‘다 들여다보인다.다 보여주면 안 되고 감춰야 한다’고 조언해주셨다.순간 충격을 받았다.뭔가 감추는 부분을 두어야 관객도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인데,이전까지 생각하지 못했다.”
Q : 그렇게 주목을 받았는데,왜 언어학으로 옮겼나.
A : “당시 미술 활동으로 한국에 가보니 책에서 배운 것과 실제 사람들이 하는 말이 달랐다.또,온라인 슬롯 불법한국 친구들은 그 당시에도 드문 서울 토박이였는데,자기들도 의식하지 못하는 서울식 발음이 있었다.그런 걸 보며 의문은 계속 쌓이는데 책과 논문을 찾아도 해결되지 않았다.직접 연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.”
노마 교수는 한국어로 말하면서 한문으로 글을 쓰던 조선시대 사람들에게 주목했다.한자의 음과 뜻을 빌리지 않고 자기 말을 적을 수 있게 된 것은 어떤 변화였을까.『한글의 탄생』에서 파고든 질문이다.
Q : 한글의 매력은 무엇인가.
A : “한글은 소리의 구조가 글자 모양에 드러난다.일본의 가나(仮名))도 소리를 나타낸다는 점은 같다.하지만,글자 안에서 어디까지가 자음이고 모음인지 보이지 않는다.한글은 그런 음절 구조를 눈으로 볼 수 있다.형태와 논리가 일치하는 것이다.그런 논리를 철저하게 구현했다는 점이 재미있다.”
Q :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고 과학적인 문자라고들 한다.
A : “문자는 다 과학적이다.(웃음) 우수함의 순서 같은 게 있을 수 없다.물론,한글이 굉장히 논리적으로 만들어진 건 맞다.그렇다고‘한글로 세계의 모든 언어를 쓸 수 있다’는 건 거짓말이다.일본어에도 한글로 구별하지 못하는 소리가 있다.예를 들어서‘つ’는‘쓰’나‘츠’로 표기하는데 둘 다 실제 발음과는 다르다.당연하다.한글은 한국어를 형태로 나타내기 위해 만든 문자니까.”
Q : 한글이 한자의 발음을 적기 위한 기호였다는 주장도 있다.
A : “동의하기 어렵다.『훈민정음 해례본』은 한자어가 아닌 많은 고유어를 예로 들었다.『용비어천가』 제2장을 보라‘뿌리 깊은 나무’로 시작하는데 한자어가 없고 모두 고유어로 이뤄졌다.조선어를 글로 실현한 것이다.한글은 의성의태어까지 나타낼 수 있었다.나는 이것을 굉장한 지적 혁명으로 본다.”
Q : 문자가 생겼다는 것만으로‘지적 혁명’이라고 할 수 있나.
A : “15세기 조선의 언어 상황을 생각해보자.사람들은 조선어로 말했지만 지식인들이 쓰는 언어는 한문이었고,일부 계층이 독점했다.말하는 언어와 쓰는 언어가 달랐다.한글은 그 관계를 바꿨다‘나‘너‘좋다‘있다’같은 말을 자기 언어로 적을 수 있게 됐다.『용비어천가』처럼 왕조의 이념을 자기 글로 기록할 수 있었다.이게 지적 혁명이 아니면 뭔가.”
Q : 조선은 이후에도 한문 중심 사회였다.
A : “한글을 만들었다고 모든 사람이 갑자기 쓰게 되는 것은 아니다.일본도 모두 가나를 읽고 썼던 건 아니다.중요한 것은 지식을 어떤 형태로 남기고 함께 나눌 수 있게 됐느냐는 점이다.입에서 입으로만 전하면 사라지는 것이 많다.글로 형태를 갖추면 다른 사람이 공유하고 다음 세대가 이어받을 수 있다.한글을 만든 사람들이 이룩한 일이 그것이다.”
노마 교수는 『훈민정음 해례본』을 문자의 원리를 설명한 원리론으로,양빵배팅『용비어천가』와 『월인천강지곡』을 그 문자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준 실천론으로 평가했다.그는 “원리를 세우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직접 써 보였다.이 점에서 세종이 굉장히 흥미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”고 말했다.노마 교수의 관심은 옛 문헌에만 머물지 않는다.한국어를 처음 배우던 시절 교재에 실린‘목포의 눈물’같은 가요를 익혔고,교수가 된 뒤에는 한국 가요를 수업에 활용했다.최근에는 K팝 뮤직비디오를 분석한 책(『K-POP 원론』)도 냈다.843편을 59가지 주제별로 분류했을 만큼 들여다봤다.
K팝은 아이돌 문화 이상의‘코리아네스크’
Q : K팝에서 무엇을 발견했나.
A : “블랙핑크 뮤직비디오를 보고 정말 놀랐다.나는 현대미술을 했고 8㎜ 필름으로 영상 작품도 만들었다.작품을 꽤 많이 봐왔다고 생각하는데,살아오면서 본 적 없는 신선한 조형이 나타난 것이다.그런데 사람들은 그냥 아이돌이라고 하고 끝낸다.이걸 지적인 세계에서 제대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.”
Q : K팝을 인상파에 비유했다.
A : “인상파 그림이 처음 나왔을 때 평론가들이‘이게 그림이냐.인상이지’라고 했다.그러자 화가들이 스스로‘인상파’라고 부르기 시작했고,지금은 미술사에서 중요한 존재가 됐다.K팝도 그냥 한국 것,아이돌로만 보면 안 된다.나는 K팝을‘한국풍’이라는 뜻의‘코리아네스크’라고 부른다.”
Q : 그게 뭔가.
A : “로마네스크는‘로마풍’이라는 뜻이다.처음에는 로마를 흉내낸 것이라고 낮춰 부르는 말이었다.그런데 지금은 하나의 건축·미술 양식을 가리키는 중요한 이름이 됐다.나는 그런 의미에서 K팝을‘코리아네스크’라고 부른다.세계 여러 문화의 요소를 가져왔다고만 보면 안 된다.그것들을 한두 단계 끌어올려 새로운 형태로 만든 것이다.지금은 가볍게 보지만,나중에는 문화사의 중요한 이름이 될 수 있다.”
그는 반드시 봐야 할 K팝 뮤직비디오로 블랙핑크의‘뚜두뚜두’(2018)와 방탄소년단의‘피 땀 눈물’(2016)을 꼽았다.그러곤 이런 말을 했다.“‘외국 사람이 한국을 평가해주니 기분 좋다’는 데서 끝나면 안 된다‘한국’이라는 틀을 내려놓고 그 자체를 보자.그러면 더 깊고 재미있는 것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.”
어머니는 한국인이지만 일본을 받아들이며 살았다.아들은 일본인이지만 한국을 받아들이며 살아왔다.180도 다른 길을 걸은 셈이다.이쯤 되니 궁금해졌다‘한국’정체성을 드러내지 말라던 어머니의 당부는 언제까지 지켰을까.
“전혀 안 지켰다.대학 가서 친한 친구들에게 털어놨다.그랬더니‘어,그래’하면서 이전과 똑같이 대했다.달라진 건 없었다.연애할 때?왜 숨기겠나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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